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문턱에서 코엑스를 찾았다. 바로 2025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열리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2025 생활백서: 삶의 낭만’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번 전시는 일상의 공간을 어떻게 더 나답게, 그리고 더 따뜻하게 채워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영감들로 가득했다.
무려 501개의 브랜드와 1,800개가 넘는 부스가 참여했다는 소식을 미리 접하고, 나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방문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을 마주한 순간, 그 규모와 다채로움에 계획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발길 가는 대로 관람하게 됐다. 전시를 둘러보며 가장 먼저 인상 깊게 다가왔던 건 ‘함께 위기에 처하기’처럼 하나의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와 철학이 조화를 이루며 삶의 다층성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특히 다기능 주거 공간에 대한 접근,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 컬렉터블 디자인의 새로운 면모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진지한 힌트로 느껴졌다.
1. 다기능 주거 공간이란, 나의 하루를 디자인하는 가장 유연한 방법이었다
전시를 관람하며 내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았던 건 ‘다기능 주거 공간’이라는 트렌드였다. 코로나19 이후 익숙해진 재택근무, 그리고 늘어난 실내 활동은 분명 우리에게 공간 활용의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책상을 하나 더 두는 문제를 넘어서, 이제는 한 공간 안에서 휴식과 일, 식사와 여가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트렌드는 지금 우리의 삶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에서 선보인 세 가지 주거 공간—스튜디오, 아파트, 단독주택—은 디자이너들의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구현 가능한 라이프스타일로 제시되었다. 구병준 디자이너의 ‘단독주택’은 외부의 자연과 내부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였고, 그 안에서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이 유려하게 흘렀다.
내가 머무른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공간은 백종환 디자이너가 만든 ‘스튜디오’였다. 그는 한정된 공간 안에 창의성과 휴식을 공존시키는 법을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거실이자 작업 공간, 휴식 공간이자 명상의 장소. 이러한 복합적 기능은 단순한 가구 배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고려한 결과물이었다.
2. 지속가능성의 미학은 결국 가장 오래도록 남는 아름다움이었다
올해의 전시는 유난히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가 도드라졌다. 그건 단지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 늘었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전시된 브랜드와 제품들이 보여준 지속가능성은, 삶의 방식에 대한 철학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덴마크 브랜드 플렉사(Flexa)는 키즈 가구에서부터 그 철학을 녹여냈다. 성장에 따라 변형이 가능한 모듈형 구조와 아이의 움직임을 고려한 라운드 마감, 그리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까지. 단순히 ‘예쁘다’는 기준이 아닌, ‘함께 자라날 수 있다’는 기준에서의 아름다움이었다.
국내 브랜드 중 네오플램 베터핑거의 주방용품 라인도 인상 깊었다. 재활용 소재와 친환경 공정을 사용한 제품은 물론, 디자인 자체가 절제되어 있었다. 나는 유리 재질의 도시락 통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는데, 그것은 단지 예쁜 그릇이 아니라, 더 이상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D홀에 전시된 그린무어의 식물 전시 공간은 단순한 가드닝을 넘어선 감성의 실현이었다. 조명과 어우러진 식물 배치는 마치 작은 식물원을 옮겨 놓은 듯했고, 식물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실내 공기 정화와 심리적 안정에까지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3. 컬렉터블 디자인의 시대 – 일상이 예술이 되는 그 경계에서
마지막으로 내가 깊이 감동했던 건, 이번 전시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던 ‘컬렉터블 디자인’이라는 흐름이었다. 예전에는 예술품을 따로 사고, 생활용품은 실용성 중심으로 구매했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디자인 가구 하나가 예술품처럼 감각을 건드리고, 무드등 하나가 공간의 온도를 바꾸는 시대가 되었다.
HAY, AGO, LEXON, Rarelow 등은 그 중심에 있었다. 특히 HAY의 테이블웨어 컬렉션은 단순히 식기를 넘어선 조형물에 가까웠고, LEXON의 무드등은 물건이 주는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였다.
VIP 라운지에서 제공된 녹차와 보이차도 잊을 수 없다. ‘차’라는 소재는 전시장에서의 피로를 잠시 멈추게 했고, 그 안에서 나는 물건이 주는 기능을 넘어, 그것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선사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감성적인 라운지의 연출은 마치 하나의 인테리어 연극 같았고, 그 연출 또한 '컬렉터블'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 –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더 이상 ‘보고 사는’ 전시가 아니다
2025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나에게 단순히 제품을 보거나 구매욕을 자극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를 질문하는 전시였다.
- ‘다기능 주거 공간’은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공간 전략이었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 ‘지속가능성’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삶의 철학으로 녹아든 시대의 흐름이었으며, 다양한 브랜드에서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컬렉터블 디자인’은 삶의 모든 공간이 예술이 되는 시대를 보여주었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나는 전시장을 떠나며 구매 리스트 대신,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감각은 꽤 오래 내 안에 머물 것 같다. 그런 점에서, 2025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나의 ‘삶의 낭만’을 다시 정의해 준 특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