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현대미술기획전 《공동의 감각》을 다녀왔다. 팬데믹 이후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서로의 체온, 공기를 나누던 일상, 자연스레 맺어졌던 관계들—그 모든 것을 되짚는 여정이었다. 전시는 ‘우리’라는 단어를 중심에 두고, 인간 사이의 연결성과 공동체적 감각을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우리를 음미하기〉, 〈함께 위기에 처하기〉, 〈Imagine, 우리를 확장하기〉라는 제목 아래, 평면,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관람객을 그 감각의 회복으로 이끌었다.
특히 나는 〈함께 위기에 처하기〉 섹션에서 오래 머물렀다.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영상과 설치, 그 속에서 쉼 없이 흐르던 사람들의 움직임과 목소리,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되묻는 감각. 바로 그곳에서 나는 ‘우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오래 고립돼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1. 함께 위기에 처하기 – 분절된 공동체를 다시 묶는 예술의 힘
‘함께 위기에 처하기’는 팬데믹과 전 지구적 위기를 마주한 오늘날의 인간에게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섹션이었다. 이 섹션은 단순한 비판이나 서사의 전달을 넘어, 예술을 통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러시아 출신의 슈토 델라의 설치작업이었다. 그는 실제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영상 설치물에서, 고립된 개인들이 다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를 인식해 가는 과정을 시각화했다. 영상 속 인물들은 낯설고 외로워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리듬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함께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단절과 그 회복의 과정을 상징하는 장면 같았다.
안젤리카 메시티의 작품은 오히려 소리의 부재와 몸짓을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비언어적 방식으로 하나의 퍼포먼스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며, 언어가 없이도 우리는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되새겼다.
요한나 빌링의 영상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제각각의 리듬으로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되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보였던 그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며 일종의 의도된 움직임으로 다가오면서 나는 그 안에서 ‘함께’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2. 우리를 음미하기 – 가장 인간다운 순간,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우리를 음미하기’는 더없이 조용하고 섬세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들은 더 이상 ‘작품을 본다’는 감각이 아닌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곽한울의 설치 작품은 폐쇄된 공간과 빛의 투과를 통해 인간 내면의 상실과 복원을 동시에 상징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단절된 공간 속에서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 그 속에서 잊혀 가던 타인과의 관계가 천천히 복원되는 감각이 돋보였다.
바이런 킴의 사진은 더욱 직접적으로 ‘우리’를 말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등만을 담은 일련의 사진들은, 오히려 얼굴보다 더 진실하게 타인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 누군가의 등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연대감에 눈물이 고였다.
민재영의 회화는 일상의 조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있었다.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 식탁 위에 놓인 머그컵, 어수선한 방 안에서의 작은 움직임들. 그 모든 것은 팬데믹 속에서 우리가 놓쳤던, 그러나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었다. 이 섹션은 말 그대로 ‘우리를 음미하는’ 시간이었고, 나는 내 안의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꼈다.
3. Imagine, 우리를 확장하기 – 다르기에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
전시의 마지막 섹션은 다소 실험적이었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Imagine, 우리를 확장하기’는 제목처럼 ‘상상’을 통해 새로운 관계,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공간이었다.
천경우의 멀티채널 영상은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처럼 병렬적으로 보여주었고,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 풍경, 문화 속에서도 하나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체감하게 했다.
함경아의 퍼포먼스 설치는 관객이 직접 참여해야만 완성되는 구조였다. 나는 처음엔 다소 망설였지만, 이어폰을 꽂고 낯선 타인의 목소리를 따라 말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내가 아닌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보는 놀라운 감각을 경험했다.
김온의 작품은 더욱 철학적이었다. 거울로 가득 찬 방 안에서 관람객은 자신과 마주해야만 했다. 단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람객의 시선 속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방식으로 관계의 확장을 제시했다. 우리는 단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선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결론 – 《공동의 감각》은 결국 ‘우리’를 다시 느끼게 만든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동시대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공동의 감각》은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사건 이후, 우리가 얼마나 달라졌고,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다시 회복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만든 깊은 예술적 경험이었다.
- ‘함께 위기에 처하기’는 인간과 공동체의 관계 회복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우리를 음미하기’는 잊혔던 감각, 특히 관계와 감정의 디테일을 미학적으로 복원하며 관람객과 정서적 교감을 이끌어냈다.
- ‘Imagine, 우리를 확장하기’는 예술을 통해 시공간과 언어, 문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예술이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함께 상상하며, 결국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공동의 감각》은 나에게 ‘우리’라는 단어의 깊이를 다시 가르쳐준, 잊지 못할 여름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