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 따뜻한 햇살 속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퓰리처상 사진전에 다녀왔다. 사실 이 전시에 큰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사진 몇 장 감상하고 나오겠지’ 정도로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공기는 무거웠고, 몇 발자국 떼지 않았는데 벌써 목이 메어왔다.
사진 한 장 한 장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전쟁, 기아, 인권, 자유, 죽음과 생명에 대한 기록이자 울림이었다. 특히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준 ‘네이팜탄 소녀’, ‘가시나무와 소녀’, 그리고 ‘영웅의 귀환’ 같은 작품들은 잊기 어려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세 가지 주제, 즉 전쟁과 인권의 기록, 감동과 회복의 순간들, 그리고 사진의 힘과 촬영 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전쟁과 인권, 눈을 뗄 수 없던 고통의 기록
가장 먼저 나를 멈춰 세운 사진은 ‘네이팜탄 소녀’였다. 뜨거운 화염 속에서 벌거벗은 채 도망치는 9세 소녀 김푹. 그 사진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사진의 설명을 읽는 순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베트남 전쟁의 비극과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바로 옆에는 ‘코레타 스콧 킹과 딸’의 사진이 있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장례식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아내와 어린 딸이 침묵 속에 서 있는 장면. 인종차별이라는 오래된 고통이 어떻게 인간의 얼굴 위에 새겨지는지를 담아낸 장면이었다.
또한, ‘가시나무와 소녀’는 수단의 기아 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말라버린 아이의 몸, 그 아이를 바라보는 독수리. 말이 필요 없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세계가 움직였다는 사실은, 사진이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바꾸는 힘이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이들 작품은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양심을 깨우고,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묻는 사진들이었다.
감동과 회복, 사진 속에서 만난 인간의 온기
고통과 상처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전시의 중후반부에는 따뜻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은 ‘영웅의 귀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긴 전투 끝에 집으로 돌아온 한 병사와 그의 가족이 재회하는 순간. 아이가 아버지 품에 달려가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린다. 주변 사람들의 박수가 그 장면을 감싸고 있었다.
또 다른 작품 ‘생명의 키스’도 잊을 수 없다. 전기공이 감전된 순간, 동료가 그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장면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리는 모습, 절망적인 순간에 포기하지 않는 눈빛. 관람 중이던 어떤 분은 이 사진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이처럼 퓰리처상 사진전은 비극과 폭력만을 전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회복, 희망, 사랑, 연대의 순간도 담겨 있다. 고통을 견딘 자만이 줄 수 있는 위로, 그걸 이 사진들이 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감정에 그대로 젖어들었고, 전시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한동안 그 여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진의 힘, 카메라 뒤의 이야기들
이번 전시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단지 ‘어떤 사진이 유명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이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 의해 찍혔는가까지 함께 알려줬기 때문이다.
예컨대 ‘네이팜탄 소녀’는 닉 우트(Nick Ut)라는 사진기자가 목숨을 걸고 촬영한 뒤, 그 아이를 직접 병원까지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진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참여하는 목격자였던 것이다.
‘가시나무와 소녀’를 찍은 케빈 카터는 윤리적 비판과 내적 고통 속에서 결국 생을 마감했다. 그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그 한 장의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 사진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나는 사진이 기술이 아닌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배웠다. 이 전시는 카메라 뒤의 인간, 그리고 그들의 선택과 고뇌를 함께 조명하면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깊이를 느끼게 해 주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렌즈가 아니라 사람의 ‘눈’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결론 – 기록은 잊지 않게 하고, 감동은 움직이게 한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나에게 단순한 ‘사진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과 감정, 고발과 치유, 냉철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전쟁과 인권의 잔혹한 현실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고, 다시금 따뜻한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마음이 녹는 경험을 했다.
이 전시는 결국 묻고 있었다. “우리는 이 장면들을 기억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지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나는 한참을 뒤돌아 서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사진들을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사진을 통해 들려오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