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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창작의 순간 전시 후기 – 피카소의 비밀과 예술가들의 작업실 체험

by 서진(瑞鎭) 2025. 4. 8.

창작의순간- 예술가의 작업실

요즘 예술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서, 지난 주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다녀왔습니다. 특별 프로그램 <창작의 순간 - 예술가의 작업실>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평소에도 작업실이라는 공간에 흥미가 많았던 터라 이번 전시는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특히 피카소의 비밀, 다양한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과 연결성, 그리고 영화 상영 후 이어진 스크리닝 & 토크 프로그램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하고 온 느낌이라, 이 소중한 시간을 기록해보려 합니다.

피카소의 비밀: 창작이란 살아 움직이는 것

상영작 중 가장 먼저 본 영화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피카소의 비밀>이었습니다. 사실 관람 전까지만 해도 "피카소 다큐멘터리? 재미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저는 완전히 빨려들어갔습니다.

하얀 캔버스 앞에 선 피카소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붓 대신 마치 마술 지팡이를 든 마법사처럼, 선을 긋고 색을 채우고 지워가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나갔어요. 중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을 고치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그림을 뒤집어가기도 했습니다. 모든 과정이 너무 즉흥적이고 자유로워서, 마치 피카소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어요.

가장 놀라웠던 건 피카소가 작품을 완성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그는 완성된 결과보다, 캔버스 위에서 펼쳐지는 변화와 움직임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75분 동안 20점을 완성하는 동안, 저는 숨조차 쉬지 않고 스크린을 바라봤습니다. '아,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어요. 그때 피카소가 무심코 그은 한 줄이, 제 안에서는 거대한 울림이 되어 퍼졌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습니다. 저 역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어요.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창작의 순간을 체험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과 연결성: 다른 길, 같은 질문

<피카소의 비밀>이 주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실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프로그램은 화가, 건축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창작하고 고민하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줬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안젤름>과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였습니다.
<안젤름>에서는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안젤름 키퍼가 등장합니다. 그는 과거 독일의 어두운 역사, 전쟁, 신화 등을 주제로 거대한 캔버스를 채워갔어요. 작업실은 거의 폐허처럼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는데, 그 안에서 그는 집요하게 질문하고, 기억하고, 기록했습니다. 창작이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시간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사유라는 걸 깨닫게 해줬어요.

반면, <백남준>은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줬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예술가 백남준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TV, 전자 부품, 레이저로 가득했는데, 그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를 반복했어요. 마치 과학자이자 예술가 같았죠.

이 두 사람을 보며 느낀 건, 예술가들은 모두 다른 길을 걷지만 결국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는 거였어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작업실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그들은 거대한 우주를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영화로 따라가는 것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그들의 질문을 나의 질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스크리닝 & 토크 프로그램: 영화 너머의 깊은 세계

이 프로그램이 특별했던 진짜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상영이 끝난 후 이어진 '스크리닝 & 토크' 세션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제가 참여한 <피카소의 비밀> 토크에서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이윤영 교수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교수님은 피카소의 즉흥성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수만 장의 드로잉을 통해 기본기를 쌓았고, 그 기반 위에서 자유로운 즉흥성이 가능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영화에서 봤던 피카소의 자유로운 붓질이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어요. 천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과 고뇌 끝에 탄생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또한, 다른 세션에서는 건축가 박희찬과 큐레이터 이현주가 <알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인간 중심적 건축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예쁜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관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됐죠.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만 봤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와 의미를, 전문가들의 설명을 통해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스크리닝 & 토크'가 아니었다면, 그저 좋은 영화 몇 편 본 걸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저는 예술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국립현대미술관의 <창작의 순간 - 예술가의 작업실>은 제게 단순한 전시나 영화 관람 이상의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피카소의 비밀>을 통해 창작의 생생한 순간을 목격하고, 다양한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품게 되었으며, <스크리닝 &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너머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습니다.

창작이란, 결국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 실패와 깨달음의 연속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꼭 추천하고 싶어요. 창작의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싶다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세요. 아마도 당신 안의 작은 예술가가 깨어날지도 모릅니다.